"저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작품과 삶은 일종의 피드백 작용처럼 계속해서 루핑되는 관계니까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과 삶은 맞물려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사람이나 실제 사건처럼 당연히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관계를 같이 보는 것에 흥미가 있어요. 레이어가 늘 여러 겹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그걸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룰 때 더 흥미롭고 재밌어집니다. 그런데 작가와 텍스트의 관계를 분리되었냐 아니냐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물론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어떤 예술 장르라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사회 사이의 영향 관계가 중요합니다. (...) 저는 실제 삶 역시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션이 삶을 지탱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진행이 안 되지 않나요. 실제 삶에서 픽션을 빼면 인간은 언어 이전의 동물인 겁니다."


"요즘 들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연한 걸 몰랐던 겁니다. 그것 역시 언어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언어를 사용하면 구분과 분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를테면 세계는 이미 픽션으로 이뤄져 있고, 우리가 픽션의 영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 사실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생각 역시 언어의 한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끊임없는 피드백 작용, '그걸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하는 예술에서 드러내는 게 맞고, 더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어떤 정치적인 지점이라든가 예술사적인 지점에서의 의의와 연결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연결을 직접적으로 시키게 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건 진실 여부가 아니라 효과입니다. 물론 효과만 있으면 어떤 거짓이라고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냉정하게 얘기하자는 거죠. 실제로 효과만 있으면 그게 거짓이라도 기능을 하잖아요. 꼭 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빌렘 플루서적인 디지털 가상 세계까지 안 가더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케이스지만 트럼프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위험한 이야기지만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팩트나 진실에 집착하는 태도, 그걸 규명하려는 시도도 사실은 효과를 산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언급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오월의 사회과학도 읽어보지 않았고 뭐도 보지 않았고 뭐도 읽지 않았고 그런데 유령이니 뭐니 하면서? 아우스터리츠(무려 이것도 읽어보지 않음)는 둘째 치고 황석영이나 다른 모든 작업들은 그럼 몽매에 빠져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결코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데리다가 말하려던 것도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바보같이? 포스터나 엔위저가 그것을 몰랐을리도 없고... 해체주의는 언제나 물밑에서만 움직인다든지... 망각에의 저항이든 리비도의 투여든 그것들은 다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나는 정지돈의 영향을 받아버린 것은 아닐까? 삶은 픽션이라는 말 물론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지 아니꼽고 엄청 좁은 길처럼 보인다 어 삶을 재현하려고 했던 격동기의 작가들 50년대 60년대 70년대 2차대전 홀로코스트 작가들을 바보로 만드는 말 아닌가? 그들이 바보인가? 생은 어제들의 아카이브인가? 그들은 바보가 아니고 그렇다 정지돈은 2010년대니까 유효하지 미술에서 영화에서 검증된 것을 문학으로 끌고 왔으니까 유효하지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돌 맞았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든 조금씩의 진실(진실?)이 깃들어 있고 정지돈의 용어를 그냥 쓰자면 시대별로 유효한 형식이라는 것이 있고 언어의 한계 그거를 무릅쓰고 해야만 것도 상황도 분명히 있는데 시급함 불가능함 그 앞에서 입을 닫는 게 더 윤리적일지라도 윤리마저 포기하고 그런걸 두고 바보야 바보들아 하는 게 고와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고 똥이 구린 건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데 말이야 본인이 쓴 것은 더 빠르게 낡은 것이 될 텐데. 그렇다면 왜? 미래를 위해서? 모든 역사는 미래를 위한 것 아닌가? 나쁘게 말하지도 말자 그러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아버리면 쓸 수 있는 게 없을 뿐이고 좀 발칙하게 굴었을 뿐이지? 그건 너무 례술적인 제스처라 반감이 또 생기지 않을 수 없지? 픽션이 믿음과 정합하는 순간 역사라는 것이 되는데 그리고 역사야말로 어떤 효과인데, 역사는 재미의 문제가 아닌데, 다만 내가 쓴 것에서 그런 자리를 잘 만들어두지 않은 것이 조금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박솔뫼 본인도 그런가? 그런가? 하다가 말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박솔뫼를 무슨 무기력이니 뭐니 탈존주의니 뭐니 그렇게 읽는 데에 화가 났을 따름이다

  언어라는 종교? 아버지에 대한 비유 : 미시적인 차원까지 내려갔을 때 생물학적으로 아버지라는 것은 아버지라는 효과보다 과연 중요한가?

Posted by 공장장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