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작품과 삶은 일종의 피드백 작용처럼 계속해서 루핑되는 관계니까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과 삶은 맞물려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사람이나 실제 사건처럼 당연히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관계를 같이 보는 것에 흥미가 있어요. 레이어가 늘 여러 겹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그걸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다룰 때 더 흥미롭고 재밌어집니다. 그런데 작가와 텍스트의 관계를 분리되었냐 아니냐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물론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어떤 예술 장르라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사회 사이의 영향 관계가 중요합니다. (...) 저는 실제 삶 역시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픽션이 삶을 지탱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진행이 안 되지 않나요. 실제 삶에서 픽션을 빼면 인간은 언어 이전의 동물인 겁니다."


"요즘 들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당연한 걸 몰랐던 겁니다. 그것 역시 언어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언어를 사용하면 구분과 분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를테면 세계는 이미 픽션으로 이뤄져 있고, 우리가 픽션의 영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 사실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생각 역시 언어의 한계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끊임없는 피드백 작용, '그걸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하는 예술에서 드러내는 게 맞고, 더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어떤 정치적인 지점이라든가 예술사적인 지점에서의 의의와 연결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연결을 직접적으로 시키게 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건 진실 여부가 아니라 효과입니다. 물론 효과만 있으면 어떤 거짓이라고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냉정하게 얘기하자는 거죠. 실제로 효과만 있으면 그게 거짓이라도 기능을 하잖아요. 꼭 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빌렘 플루서적인 디지털 가상 세계까지 안 가더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케이스지만 트럼프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위험한 이야기지만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팩트나 진실에 집착하는 태도, 그걸 규명하려는 시도도 사실은 효과를 산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언급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오월의 사회과학도 읽어보지 않았고 뭐도 보지 않았고 뭐도 읽지 않았고 그런데 유령이니 뭐니 하면서? 아우스터리츠(무려 이것도 읽어보지 않음)는 둘째 치고 황석영이나 다른 모든 작업들은 그럼 몽매에 빠져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결코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데리다가 말하려던 것도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바보같이? 포스터나 엔위저가 그것을 몰랐을리도 없고... 해체주의는 언제나 물밑에서만 움직인다든지... 망각에의 저항이든 리비도의 투여든 그것들은 다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나는 정지돈의 영향을 받아버린 것은 아닐까? 삶은 픽션이라는 말 물론 틀린 말은 아닌데 어딘지 아니꼽고 엄청 좁은 길처럼 보인다 어 삶을 재현하려고 했던 격동기의 작가들 50년대 60년대 70년대 2차대전 홀로코스트 작가들을 바보로 만드는 말 아닌가? 그들이 바보인가? 생은 어제들의 아카이브인가? 그들은 바보가 아니고 그렇다 정지돈은 2010년대니까 유효하지 미술에서 영화에서 검증된 것을 문학으로 끌고 왔으니까 유효하지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돌 맞았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든 조금씩의 진실(진실?)이 깃들어 있고 정지돈의 용어를 그냥 쓰자면 시대별로 유효한 형식이라는 것이 있고 언어의 한계 그거를 무릅쓰고 해야만 것도 상황도 분명히 있는데 시급함 불가능함 그 앞에서 입을 닫는 게 더 윤리적일지라도 윤리마저 포기하고 그런걸 두고 바보야 바보들아 하는 게 고와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고 똥이 구린 건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데 말이야 본인이 쓴 것은 더 빠르게 낡은 것이 될 텐데. 그렇다면 왜? 미래를 위해서? 모든 역사는 미래를 위한 것 아닌가? 나쁘게 말하지도 말자 그러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아버리면 쓸 수 있는 게 없을 뿐이고 좀 발칙하게 굴었을 뿐이지? 그건 너무 례술적인 제스처라 반감이 또 생기지 않을 수 없지? 픽션이 믿음과 정합하는 순간 역사라는 것이 되는데 그리고 역사야말로 어떤 효과인데, 역사는 재미의 문제가 아닌데, 다만 내가 쓴 것에서 그런 자리를 잘 만들어두지 않은 것이 조금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박솔뫼 본인도 그런가? 그런가? 하다가 말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박솔뫼를 무슨 무기력이니 뭐니 탈존주의니 뭐니 그렇게 읽는 데에 화가 났을 따름이다

  언어라는 종교? 아버지에 대한 비유 : 미시적인 차원까지 내려갔을 때 생물학적으로 아버지라는 것은 아버지라는 효과보다 과연 중요한가?

Posted by 공장장_ :

아카이브의 여부(餘部)

- 아카이브로서의 소설과 박솔뫼의 광주에 대하여

 

 

 

 

1. 끝나지 않는 떡과 죽과 국수의 이야기


박솔뫼의 첫 소설집에 실린 「그럼 무얼 부르지」는 그의 소설들 중 서사성을 잘 보여주는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을 남기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이 5월 광주를 상징하는 ‘그 노래’를 듣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하다 떠나버린 새벽의 바에서 바의 주인이 저기, 하고 ‘나’와 해나를 불러 문득 저녁을 먹었느냐고 묻고는 근 세 페이지에 걸쳐 ‘죽과 떡과 국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또한 말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각주:1] 이야기를 시작한 남자가, “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164) 맛있는 죽과 떡과 국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나’와 해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리 끄덕여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단락이 끊어지고 장면이 전환되어 해나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갈 때까지 이어진다.

이 죽과 떡과 국수의 이야기는 ‘그럼 무얼 부르지?’라는 물음으로 응축되는 소설의 정념과 대비된 채로 남아, 광주를 노래한 김남주의 시가 ‘60년대 남미’나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을 노래한 것처럼 보이는 화자의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다는 불가능의 정서와 묘하게 공명하는 정도에 그쳐 있었다. 이 감각을 두고 김홍중은 “(실재로서의 현장의) 부재와 (상징으로서의 현장의) 과잉의 아이러니 앞에 선 인간의 당혹감”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80년 5월 광주는 이미 말들과 이미지들로만 구성된 “기억의 시스템에 포섭”되었으며 “과거의 현장은 폐색”되었기에 작가와 작가의 세대로부터 ‘박탈’되었다는 것이다.[각주:2]

하지만 박솔뫼는 「그럼 무얼 부르지」를 쓴 이후에도 꾸준히 소설 속에 광주를 등장시키는데,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 공사 현장 너머 “일부가 부서진 그렇지만 아직 남아 있는” 구도청을 바라보고,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인 것으로 보이는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는 일본인 아키비스트로 하여금 가톨릭센터 자리에 마련된 5.18 자료관의 작은 창을 통해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게 한다. 박솔뫼의 광주가 정말 폐색된 장소 혹은 역사적 상징에 불과하다면, 광주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종류의 구호를 외치거나 재현의 불가능성에 고통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화자들을 자꾸 80년 5월의 흔적으로 데려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혹은 반대로, (『그럼 무얼 부르지』와 같은 해에 출간된)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같은 소설을 생각해 보면 박솔뫼의 거듭되는 광주 방문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고리 핵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이후의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소설들(「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우리는 매일 오후에」, 「겨울의 눈빛」)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5·18을 외국의 일처럼 느끼는 한국인과 한국의 일을 ‘May eighteenth’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외국인 같은 인물들,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사건’의 경험으로부터 유리된 인물들을 광주로 부산으로 데려가 박솔뫼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에 관해서 작가는 『겨울의 눈빛』의 작가노트로 쓰인 「9월 도쿄에서」에서 비교적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전에 5·18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실제 내가 그 소설에서 묻고 싶었던 것은,이라고 해야 할지 해보고 싶었던 것은 많은 글에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단원의 막, 의의와 지켜야 할 가치에 가기 전의 공간, 그 공간에 서서 그 공간에 멈춰 있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공간과 기억을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 멈추는지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 늘 쓰고 싶다. 역사라는 것을 내 안에서 다른 식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도 공원에 앉아 그냥 우는 것이라도 그것이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의문이 조금 구체화된 것은 도미야마 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이진경이 발표했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5·18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했는데 그 증언의 내용이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중략)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고 길에 사람들이 한번에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다니고 그런 이야기에는 그 말 자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니 여전히 나는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에서 멈춰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 또한 당분간 하게 될 고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 「9월 도쿄에서」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에 멈춰 무엇이 보이는지 보는 것. 여기서 ‘보는 것’에는 두 가지 단서가 달려있는데 하나는 ‘무엇을/어디서 보느냐’(“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보느냐’(“멈춰”)는 것이다. 이는 「겨울의 눈빛」에서 자신의 몸을 흔들며 “당신이 보고 싶은 게 그럼 무어야”[각주:3]하고 묻는 남자에게 무어라고 대답하는 대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비에서 시작해서 어디로도 흘러가지 않고 그저 비를 따라가는 것. 비 내리는 거리에서 비 내리는 밤거리로 그리고 다시 비 오는 아침이 되는 것”[각주:4]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태도이다. 박솔뫼는 어디서 보느냐와 어떻게 보느냐의 두 가지 문제 모두에 있어서 한강이나 임철우 등 광주를 ‘보기로’ 결정한 다른 작가들과 궤를 달리 하는데 이들은 물론 ‘구도청’의 ‘바깥’(「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의 화자가 자리하는)이 아닌 ‘안’에서, 죽음을 각오하거나 죽임을 당하며 사건과 더불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떡과 죽과 국수’의 바로 옆에 놓여있을 것만 같은 ‘빵’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면 자신이 “그런 명확한 세계에 없었다”(159)고 말하면서도 어떤 의지만은 확고한 박솔뫼의 ‘본다’는 행위로까지 소급해갈 수밖에 없다. 김주선은 박솔뫼의 ‘보는 화자’들을 두고 광주와 부산의 사건들을 ‘기어이’, ‘끝내’ 보려 하는 것이라고, 이는 “자아를 파괴해버릴지도 모를 끔찍한 사건의 트라우마적 불안 바깥에 있되,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사건을 포기하지”[각주:5]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건 자체를 지시하려하지 않는, 텅 빈 기표로서의 ‘광주’는 되려 무수한 증언들을 전부 ‘광주’로 돌려보내게 되는 “무한히 열린 아카이브”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솔뫼는 광주에 대해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5월 광주의 재현 불가능성으로부터 ‘광주’라는 기표를 아감벤의 ‘표시’로까지 비워내면서 동시에 광주의 주변을 흐르는 수많은 말 들을 그에 대한 ‘증언’으로 수렴시키려는 기획은 결국 광주에서는 ‘광주’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어딘지 헐겁고 무책임하게 여겨진다. 이 지평에서 광주에 대한 이야기들은 동등하게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불가능성에 직면해 있는 동시에 불가침적인 각자의 의미를 지님으로써 위계가 없는 평면상으로 압착된다. 이러한 관점은 한강의 광주와 박솔뫼의 광주를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발생하는 입체성을 유실하고 광주를 다룬 문학들을 ‘트라우마적이고 멜랑콜리적인’ 역사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로만 분류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중립적인 지점, 즉 ‘아카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2. 한낮의 유령들



아카이브라는 단어는 ‘원리’를 뜻하는 ‘아르케’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데, 이르케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원리, 혹은 ‘시작’의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규범적이고 법적인 원리, 혹은 ‘명령’의 원리이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있었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사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이 두 원리가 하나 이상이며 둘 이하라는 점이다. 시작의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근원을 상징한다. 그러나 법의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인위적이고 규제적인 질서로부터 시작한다.

- 조선령, 「아카이브와 죽음충동 :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아카이브(Archive)는 라틴어 아르키붐(Archivum)에 기원을 두는 그리스어 아르케이온(Archeion)에서 파생된 말로서, 현대적으로는 장기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이나 문서를 체계적으로 관리-보존하는 장소로서의 기록관, 또는 그 기록들 자체를 일컫는다.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공적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인 1789년 파리의 국립 아카이브(Archives Nationales)가 설립된 이후로[각주:6], 당시의 아카이브의 철학적 입장은 ‘역사성’, ‘객관성’, ‘가치중립성, ’자연성(naturalness)’ 등이었다.[각주:7] 그러나 20세기 말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 프로이트의 흔적』(1995), 할 포스터의 「아카이브적 충동」(2004) 등의 문헌과 이를 이론적 배경으로 삼은 오쿠이 엔위저의 전시 「아카이브 열병 : 현대미술의 도큐멘트 사용」(2008)을 기점으로, 아카이브 개념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엄결성을 넘어서 가치지향적이고 주관적인, 현대미술의 방법론이자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미학적 전략’이자 ‘수사학’이 되었다.

이러한 ‘탈근대적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들 중 엔위저는 ‘기억의 정치학’, 즉 “정보의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산출하는 아카이빙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강조”하며, “아카이브를 이용하는 현대 미술가들의 작업을 “기억상실과 아노미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그것을 통한 집단적 상상력의 회복 행위”로 읽어낸다. 한편 할 포스터는 아카이브의 “공적이고 객관적인 경향에 주목”하며, “과거의 아카이브를 재해석하고 파편화시키고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기”를 통해 “편집증적이고”, “사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함으로써 “공적이고 규범적인 아카이브에서 일탈하는 대안성”의 자리에 “새로운 리비도적 투여”를 가능함으로써 “지배서사에 저항하는 방법론”으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조선령은 포스터가 말하는 아카이브가 사적인 전유의 성격을 띠는 이상 “근대적 아카이브를 패러디하고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반아카이브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지적한다.[각주:8]

그렇다면 문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엠마뉘엘 카레르나 데이비드 실즈 같은 작가들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떠오르는 이름은 W.G. 제발트이고 그중에서도 『아우스터리츠』(2001)일 것이다. ‘아카이브’라는 키워드를 놓고 보았을 때, 이 소설을 관통하는 긴장은 건축과 문명의 역사를 집대성하고자 하는 건축사가-아키비스트로서의 주인공 아우스터리츠가 본인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해 스스로 아카이브의 파편들로서 자리하게 되는 전도(轉倒)로부터 나온다.[각주:9] 이는 소설의 말미에 아우스터리츠가 보모 베라로부터 장미 여왕의 시동으로 분한 자신의 사진[각주:10]을 건네받는 장면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는 그 사진으로부터 아무런 기억도 과거도 떠올리지 못하고, 그의 삶의 조각을 객관적이고 결정적으로 증거했어야 할 사진은 반대로 그의 (하나의, 따라서 모든) 기억의 부재를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각주:11] 데리다라면 이를 두고 ‘기억의 보완물’로서 기능했어야 할 사진이 외려 “원본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토대”로 기능하는, 즉 그것의 폭력성이 현현한 장면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에게 있어 아우스터리츠가 찾고자 했던 ‘근원 혹은 기원’은 “유령과 같은 허구적 구조 위에서만 존재 가능한 범주”이다.[각주:12] 

한편,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은 본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로고스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것의 ‘해체’를 시도하는 작업이지만 그 과정에서 아카이브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함축하고 있기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조선령이 인용하는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기억의 직접물”이 아니며, 오히려 “‘기억과의 단절’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인식론적 투쟁의 장소”라고 주장한다. “근본적인 유한성 없이는, 억압에 국한되지 않은 망각의 가능성 없이는, 어떤 아카이브적 욕망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과학적 객관주의를 고수하고자 했던 역사학자인 예루살미의 예를 들어, ‘완벽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최초의 아키비스트’가 되고자 하는 그의 욕망과 노력이 오히려 그를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음을 지적하며 이를 “아카이브 열병”이라 지칭한다. 나아가 이러한 ‘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예루살미가 추구했던 것은 물론 모든 ‘아카이브’의 핵심에 비실체적이고 초월적인 권위,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자면 ‘원초적 아버지’의 흔적이 자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키비스트는 아카이브를 구축함으로써 ‘타자의 자리에서’ 발언하고자 하지만 “이 타자는 이미 죽은 아버지, 유령이다. 이 유령은, “옳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옳다는 것이 증명된, 마지막 말을 하게 되어 있는, 가부장적 유령(fantôme paternel)”이다.”[각주:13]

즉, ‘아르케’가 ‘시작’의 원리로서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근원의 상징’과 ‘명령’의 원리로서 ‘인위적이고 규제적인 질서’ 모두와 분리 불가능한 연관을 가질 때, 그것을 완벽히 합치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아카이브 열병”을 낳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아버지’와 ‘죽은 아버지’를 동시에 보겠다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두 아버지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듯, ‘탈근대적 아카이브’라는 것과 그것의 ‘반아카이브적 성격’은 ‘근대적 아카이브’의 외부에서 그것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애초 ‘근대적 아카이브’의 중심부에 숨겨져 있었던 “유령과 같은 토대를” 가시화한 것뿐이라는 것이 데리다의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아래에서 아카이브의 엄결성을 보장해 줄 ‘아카이브의 외부’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유령’의 형태로 아카이브를 떠돈다.

  상당히 멀리 돌아왔지만, 이렇게 아카이브의 연원과 예술에서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본 이유는 김주선이 박솔뫼의 소설을 두고 “무한히 열린 아카이브”라 명명한 것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을 읽은 노태훈 또한 박솔뫼의 근작들이 ‘아카이브로서의 서사’를 구축하려 한다고 평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4] 기실 박솔뫼의 소설 속 인물들은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걸으며 읽거나 보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이들을 ‘아카이빙’과 ‘아카이브’라는 용어로 규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리에 가서 텅 빈 고리를 보는 것은 중요하지. 사람들이 모두 떠나서 폐허가 되었구나 하고 제 눈으로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해. 이곳이 고리구나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텅 빈 고리에 다녀왔어 정말 텅 비었더군이라고 말하면 무언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 나는 지금 일어나는 그 사건, 바로 그 일을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피로와 기만을 느꼈다.

- 「겨울의 눈빛」



  「겨울의 눈빛」의 화자가 느끼는 ‘피로와 기만’은 단순한 무기력감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은 고리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부산이며, 텅 빈 고리를 보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남자는 고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달리 말하면 아카이브의 구축에 참여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되새겨보건대, 우리는 「겨울의 눈빛」의 화자가 무욕망적이거나 탈정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매개나 지연 없이” “살아있는 기억”[각주:15]으로서의 고리를 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한 천진한 믿음(즉, ‘아카이브 열병’)을 거부하거나 적어도 유예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박솔뫼의 화자들은 이미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보는’ 것, 보아서 “영화인지 연극인지 무용인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만”[각주:16]들고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의 ‘유령적’인 성격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할 포스터가 말한 것처럼 ‘탈근대적 아카이브’의 구축이 ‘근대적 아카이브’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새로운 리비도의 투여를 가능케 한다면 작가는 그 기저에 깔린 프로이트적 남성성 자체에 이러한 피로와 기만을 느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피로와 기만을 회전축 삼아 우리는 박솔뫼의 ‘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에 멈춰 무엇이 보이는지 보는 것”에서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말의 자리에 있겠다는 것은 다분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것들, 즉 ‘역사’에 직접적으로 기입될 수 없는 것들에 천착하겠다는 말이다. 이는 멀리는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같은 작업들부터 가까이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같은 소설들까지, 죽은 자들의 ‘혼이라든가 정신’에 다가가려는 시도와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멈춰’서 보겠다는 데에 있다. 앞서 인용한 「9월 도쿄에서」로 돌아가자면, 이진경은 인용한 증언에 대해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글을 결론”지으며 박솔뫼 본인도 “나 역시 그런 식의 글 외에는 다른 식의 어떤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결론’은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들을 두고 멈추지 않고 나아갈 때 도착하게 되는 종착지이다.[각주:17] 하지만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결론을 유예시키고 빵들은 아직 연대나 피를 모르고 그렇게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즉 아카이빙을 시도하지만 ‘근원’에 대한 열망이 부재할 때 박솔뫼가 구축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3. 우리가 잡고 던질 수 있는 모든 것


  박솔뫼의 ‘멈춤’은 이렇듯 그의 소설 및 화자들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소설을 인과율과 의미화로 읽는 데 익숙한 독자 및 평론가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박솔뫼의 인물들에 대해 심진경은 극장화된 세계 안의 주체들이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하며 그것과 멀어지고 있는 탈정념적 주체의 모습을 갖는다고 보았으며[각주:18], 김홍중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생존주의’의 거울상으로서 ‘탈존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기도 하였다.[각주:19]  이러한 해석들은 기본적으로 소설이 의미화된 ‘역사와 사회’에 가까워지거나 마침내 그것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일정 부분 그래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박솔뫼는 ‘빵’에 대한 의미화의 시도를 멈추었을 뿐 소설 속에서 ‘먹고’(「고기 먹으러 가는 길」 등), ‘말하고’(「부산에 가면 만나게 될 거야」 등), ‘걷고’(「차가운 여름의 길」 등), ‘잠드는’(「광장」 등) 삶의 행위를 포기한 적 없으며 무엇보다 ‘보는’ 일을 포기한 적 없다.



나는 아시아문화전당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5.18 당시의 역사가 남은 구도청 일부를 철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알고 눈앞의 공사장을 보면 멀리 아직 남아 있는 구도청의 창백한 색과 이미 금이 가 있는 아주 얇은 유리창이 무언가…… 여기 안에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 죽은 자들만이 본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어떤 정신적인 것 막연한 것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찾아와 뒹굴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보면 곧 일부가 헐릴 그 건물이 하얗고 하얀색의 그 건물이 전혀 허약해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도 계속 누군가를 놀리고 던지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극장이란 무엇일까. 곧 헐릴 것이지만 커다란 것들 새것과 강한 것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구도청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저곳에도 무언가가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믿게 되었다. 그것은 혼이라든가 정신만이 아니고 눈에 보이고 우리가 잡고 던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 「9월 도쿄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박솔뫼가 말한 ‘장막’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주선은 ‘장막’을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사회적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치”로, “사건을 계속해서 환기할 수 있지만 그것에 완전히 몰두하지 않을 수 있게 차단하는 무대”로 풀이하며 그가 사건의 트라우마와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으로만 맞는 해석일 뿐이다.[각주:20] 그렇다면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 ‘나’가 죽과 떡과 국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나는 그 사람만큼 음식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달지 않은 블랙 캔 커피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수 있었다”(165)고 말할 때 이 가능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날’에 도달할 수 없을 때 비로소 ‘광주’가 “영원히 ‘광주’를 가리키는 텅 빈 표시로만 남는”[각주:21] 것이 아니라, “신기할 수도 있지만 실은 당연”(167)하게도 ‘광주’가 텅 빈 기표이기 때문에 ‘그날’에 도달할 수 없는 모든 이야기들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여 박솔뫼의 ‘장막’은 작가에게 어떤 장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태를 마주하고 ‘명확한 세계의 시민’이 아닌 자신을 인정함에 따라 광주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날’을 향해 우회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에 가깝다. 



A. 제가 실제로 읽거나 생각하는 문제는 비슷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소설로 쓸 때는 좀 다른 듯합니다. 뭔가 어떤 사건 자체를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그런 시선에서 빗겨나가 골목길로 걸어가는 느낌으로 쓰는 듯합니다. 나중에는 다른 식으로 출력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한 번쯤은 그래 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할 것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식으로 드러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요즘 더 많이 하게 되는 듯합니다.

- 박솔뫼, 임경선, 「골목길을 헤엄치는 말들」



  여기서부터 박솔뫼 소설 속 인물들의 나침반은 ‘그날’과 구도청의 ‘혼이라든가 정신’, 즉 80년 5월 광주라는 사건에 대한 ‘아카이브의 중심’이 아니다. 그가 사건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골목길’을 헤매며 나아갈 때 그 경로의 가짓수는 역설적으로 무한에 가까워지고, 무한한 것은 상징화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박솔뫼의 소설에서 화자의 개별성을 제거할 수 없다. 이 화자는 사건에 가닿지 못하고(않고) 장막 너머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이며 이로 인해 제약되는 독자의 시선이 가닿게 되는 곳은 ‘진실’이 아니라 그 전에 자리하는 모든 ‘말’들이 된다. 즉, 이러한 화자들에 대해 공통되거나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 지점에서 독자는 소설 독해에, 광주라는 장소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으로, 독자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는 한 박솔뫼의 화자는 (한강의 화자와 달리) 완성되지 않는다. 이것은 박솔뫼의 화자가 의도적인 여백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말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혼잣말을 할 때에도 대화를 요청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솔뫼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과, 궁극적으로 독자가 ‘사건’의 재현 불가능성을 넘어 말하게 하는 것을, 이런 말 저런 말 옳은 말 옳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것은 ‘장막’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발생하는 반작용과 같아서 작가는 이러한 가능성을 의도한다기보다 장막을 앞에 두고 눈 감지 않을 때, 즉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상상으로 재구성하려고 들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획득(당)한다. 여기가 바로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의 자리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떡과 죽과 국수의 이야기’와 ‘전혀 달지 않은 블랙 캔커피’의 이야기가 가능해지는 자리다. 이것들은 80년 5월 광주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말할 수 없는) 광주에서 우리가 말하게 되는(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며 그 자체로 ‘그럼 무얼 부르지?’라는 질문의 대답이 된다. 술집 주인이 “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없는 것처럼”, “이야기가 끊어지면 안 될 것처럼”(164) 말하는 장면에서 독자가 어떤 의문과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정확히 ‘광주’의 자리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22]



그는 설명을 본 순간 그 상황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다 완전히 착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이 무언가를 착각하면서 그 착각 속에 한동안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작은 창 아래로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아키비스트는 아카이브된 자료를 앉아서 천천히 보고 한국어를 몰라서 모르는 자료들을 살피며 그런데 이 자료들을 이전에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모르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진과 글씨들을 보았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있다. 기억에 없지만 기억에 있을 것 같은 자료를 앉아서 보았다.

-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가보지 못한 곳을 간 곳처럼 너무나 깊이 이해하는 경우, 어떤 면에서 빠리에 사는 사람들보다 아키비스트는 빠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키비스트는 그곳들에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 비로소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아카이브’는 사건을 겪지 못한 인물[각주:23]에게 “모르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억에 없지만 기억에 있을 것 같은” 어떤 것으로 묘사된다. 박솔뫼의 소설에서 이 아카이브를 대하는 인물들은 오쿠이 엔위저가 말한 ‘투쟁’적 성격을 띠지 않지만, 할 포스터가 말한 ‘리비도적 투여’를 이루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냥 “무언가를 착각하면서 그 착각 속에 한동안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란히 아카이브를 통과해간다. 상문과 영우가 각기 서명운 감독에 대한 특집 원고와 이두현 감독에 대한 논문을 쓰고자 광주에 방문하지만, 상문이 광주에 방문하기 이전에 이미 그에 관한 글을 길게 길게 써냈고 영우가 결국 이두현 감독이 아닌 영화투자자 조구택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될 때 그들은 아우스터리츠가 빠졌던(빠질 수밖에 없었던) 아카이브의 함정, 그것의 ‘유령적’ 성격을 무심하게도 극복해낸다. 

  그러므로 나는 박솔뫼가 소설에서 수행하는 아카이빙이 그 어떤 ‘근원’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유령’의 목소리도 따라가지 않는다고, 그가 광주와 부산,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곳들에서 먹고 걸으며 “우리가 잡고 던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써내려가는 일은 ‘아카이브의 여부(餘部)’로서의 소설을 이룬다고 말하고 싶다. 박솔뫼가 ‘광주’를 다루는 역전된 방식 아래에서 우리는 역사로서 재현된 ‘광주’가 아니라 비가 내리고 새 건물이 오르는 지금-여기의 광주를 앓으며, 비로소 각자의 자리에서 “영원하지 않지만 때때로 놀랄 정도로 반복되는 일”[각주:24]로서의 광주를 보게 된다. 이 반복은 독자로 하여금 장막에 가로막힌 80년 5월 앞에 멈춰 탄식하게 만드는 대신, 광주 안으로 성큼 들어가 ‘광주’와 평행하게 시간을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노래’를 ‘들어야 한다’와 ‘듣고 싶지 않다’는 대립 사이로 ‘그럼 무얼 부르지?’라는 질문이 빠져나와 나아가는 한, 그 평행성은 심지어 ‘떡과 죽과 국수’를 ‘광주’와 전혀 무관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이다.

 



  1.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 자음과모음, 2014. p.161. 이하 본 작품에 대해서는 쪽수만 표기. 본 글에서 다루는 박솔뫼의 작품들은 단행본의 경우 『그럼 무얼 부르지』와 『겨울의 눈빛』(문학과지성사, 2017)에 수록된 것이며 이하 두 단행본에 수록된 작품의 경우 각주에 작품명과 쪽수만 표기. [본문으로]
  2. 김홍중, 「탈존주의의 극장 – 박솔뫼 소설의 문학사회학」,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 92쪽. [본문으로]
  3. 「겨울의 눈빛」, 104쪽. [본문으로]
  4. 「겨울의 눈빛」, 107쪽. [본문으로]
  5. 김주선, 「증언의 아카이브」, 『문학과사회』 2015년 여름호, 565쪽. [본문으로]
  6. 황동령, 「문화·아카이브의 효율적 운영방안」, 『기록인』 제 18호, 2012, 22쪽. [본문으로]
  7. 이경래, 「아카이브 아트의 동시대 기록학적 함의 연구」, NRF KRM, 2017, 4쪽. [본문으로]
  8. 조선령, 「아카이브와 죽음충동 :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미학예술학연구』 49집, 2016, 6-7쪽. [본문으로]
  9. 아우스터리츠의 이 같은 전도는 두 가지 층위에서 일어나는데, 하나는 물론 소설 속 아우스터리츠가 기록물들과 스크린 등을 헤매며 본인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나서는 소설 속 서사의 층위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인 제발트가 이 소설에 수록된 사진들을 그것의 재현적 성격과 기존의 맥락으로부터 탈각시켜 아우스터리츠의 이야기로 재조립하는 메타적 층위에서 발생한다. [본문으로]
  10. 구연정에 따르면 이는 백여 장의 사진이 담긴 소설 전체에서 유일한 아우스터리츠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11. 구연정, 「은유로서의 현기증과 제발트의 기억 시학」, 『카프카연구』 제25집, 2011, 102-104쪽. [본문으로]
  12. 조선령, 같은 글, 10쪽. [본문으로]
  13. 조선령, 같은 글, 14쪽. [본문으로]
  14. 노태훈, 「아카이빙 픽션」, 웹진 《과자당》 2호, 2019. (https://www.gwajadang.com/blank-26) [본문으로]
  15. 조선령, 같은 글, 18쪽. [본문으로]
  16. 「겨울의 눈빛」, 103쪽. [본문으로]
  17. 「9월 도쿄에서」, 237-238쪽. [본문으로]
  18. 심진경, 「극장적 세계와 탈정념 주체의 탄생」,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131쪽. [본문으로]
  19. 김홍중, 같은 글, 99쪽. [본문으로]
  20. 김주선, 같은 글, 562쪽. [본문으로]
  21. 김주선, 같은 글, 568쪽. [본문으로]
  22. ‘술집 주인’이 ‘떡과 죽과 국수’를 이야기하는 태도는 “나는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 이야기를 듣자 데운 술을 마시던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할 이야기는 그것밖에 없다는 듯이 80년에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165)의 부분에서 ‘광주’를 이야기하는 태도와 같다. [본문으로]
  23. 김홍중의 언어를 빌리자면, “현장 없음을 현장 삼아 사는 세대” [본문으로]
  24. 박솔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창작과비평』, 2019년 가을호, 163쪽. [본문으로]
Posted by 공장장_ :


문학평론가 강동호는 2016년 가을 혁신호 체제로 전환한 <<문학과사회>>의 권두언에서 잡지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싸움’을 모색하기 위해 <<카이에 뒤 시네마>>를 참조한다. 그는 1951년 <<카이에>>의 창간호에 실린 프랑수아 샬레의 글로부터 “잡지와 비평을 연동시키는 작업과 삶에 대한 정치적 실천을 수행하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모두 동일한 작업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시대를 회고한다. 훗날 누벨바그의 기수로 등극하지만 당시 스물두 살 청년에 불과했던 프랑수와 트뤼포는 마찬가지로 1954년 <<카이에>>에서 이렇게 말한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논쟁을 통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진다.” 하지만 이 행복의 근거와 대가는 무엇인가? 즉, 에밀리 비커턴이 <<카이에>>를 두고 “진정한 ‘전투 잡지’, 즉 전투 계획이 담긴 잡지”였다고 말할 때, 이들이 전투에서 얻어낸 성과와 흘렸을 피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조르조 아감벤의 <<내용 없는 인간>>은 원경에서,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이 ‘전투’의 근원을 모색하며 이에 대해 다소 착잡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들이 “한때 인간에게 생산의 영역을 열어 보이면서, 과거와 현실이 끊임없이 용접되는 공간과 대상을 구축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발자크의 프랑오페르와 디드로의 라모를 거친 뒤 이제는 수집가와 비슷한, 포이에시스적인 능력을 거세(당)하고 이질화(를 경유하는 객관성)를 통해서만 자신의 근거를 찾아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은 분리되고, 예술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무’가 됨에 따라 (4장에서 언급되는 디오니시우스 판 레이클이 겪었던 것과 같은) 종교적인 신성함-경이감을 상실한다. 결과적으로 쌓여가는 미학 이론들과 거듭되는 형식적 실험들 사이에서 예술가는 신과 역사를 동시에 잃어버린 ‘내용 없는 인간’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괴리는 기실 5장에서 인용되는 칸트가 ‘선험적 미적 판단은 근본적인 기준의 차원에서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해답을 찾아내는 데 실패한 순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칸트는 ‘미적 판단의 근원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 “개념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식으로든 규정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판단 자체를 증명해 보일 수 없다는 무언가를, 다시 말해 ‘하나의 개념이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는 무언가’”임을 천명하며 이 질문을 돌파하고자 하지만, 이는 아감벤의 눈에 “판단 능력으로서의 취향”과 “창조 능력으로서의 천재성”을 화해시키기 위해 “양자 모두의 근원에 존재하는 초감각적인 기반이라는 신비주의적 사유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칸트의 한계로 비춰진다. 아감벤 본인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를 “우리의 예술 예찬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망각과 함께 시작된다”는 말로 갈음한다.


예술 예찬, 혹은 예술을 인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예술의 망각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꽤 역설적으로 들린다. 나로선 칸트가 부여하는 신비주의적 지위와 아감벤이 제시하는 아이러니가 불확정성의 원리와 상응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책 전체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9장에서 아감벤은 예술작품의 원천적인 ‘구조’를 두고 제시되는 ‘리듬’과 ‘수’라는 두 가지 개념을 하나의 통일된 표현으로 묶을 수 있는 통계수학적 방법으로서의 양자물리학을 언급한다. 이러한 관점을 예술 작품에 대입해 보면, “미적 형식이라는 개념은 구조주의적 비평이 (예술 작품을 재료와 형식으로 보는 미학적, 형이상학적 정의에 의존하면서 예술 작품을 미적 대상으로, 동시에 원천적인 원리로 표현하기 때문에) 피해갈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극복할 수는 없는 마지막 장애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 불가능성 앞에서 미학은 미학적 효과로 제한되기 때문에, <<카이에>>의 야심만만한 영화 감독들을 비롯한 현대 예술가가 (스스로 예술가임을 의식하는 한)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는 (결국) 일종의 ‘전투’일 수밖에 없다. 강동호는 이러한 <<카이에>>의 시대와 대비하여 ‘공통의 토대의 붕괴’와 ‘원근법적 상상력의 몰락’을 겪고 있는 현재를 씁쓸하게 진단하지만 아감벤의 시선에서는 <<카이에>>나 <<문학과사회>>가 미학(및 역사)과 가지는 관계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예술과 예술 비평이 현실과 마찰하는 경로는 자기 부정이라는 원칙 아래 방법론적 차원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정지돈의 경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소 위악적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를 취한다 : “예술은 예술이 예술적 효과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에 주목할 때만 감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예술은 예술 작품이 어떻게 관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로서 구별들을 예술 작품 속에 집어넣는다. 이렇게 되면 자연과의 유사성이나 사회정책적 의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의 효과에만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르게 질문하자면, “과거의 한 단상을 그것의 역사적 문맥으로부터 강제로 추방시키면서 단산이 지니고 있는 정통한 증언으로서의 특성을 단숨외 파괴하고 대신에 잠재적인 이질화의 힘을 부여하는” (벤야민의) 인용문들과, “일상적이라는 특징의 권위에 의해 의미를 보장받던 대상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단숨에 잃고 충격과 자극을 전달하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키치, 레디메이드와 팝아트는 과연 우리에게 어디까지 동일해질 수 있을까? 미학의 땅을 벗어나기 위해 이 둘의 구분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면, 결국 “종교예술 작품과 꼭두각시 인형, 오락용 기계장치, 사람과 자동기계로 꽉 찬 거대한 연회용 트로피 장식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두지 않”던 16세기의 감각으로, 신화들이 지배하던 세계로 우리는 회귀하는가? 하이데거가 본질적인 차원에서 서구 역사의 기초를 이룬다고 평가한 니힐리즘으로부터, 니체와 벤야민은 어떻게 탈출을 시도했던가?



+


 (...) 이쯤에서 생각나는 것은 <<문학의 기쁨>>에서 정지돈과 금정연이 김태용의 <<벌거숭이들>>을 두고 나눈 일련의 대화다.



   김태용의 소설이 갖는 일반적인 오해나 편견이 있다. 도저히 읽을 수가 없는 난해/난삽한 말장난, 문학이 아닌 망상이라는 거다. 조효원의 해설은 이에 대해 반박하며 김태용의 소설을 그렇게 읽는 자들을 기각한다. 그는 김태용의 "리듬-연상의 복잡계"가 "문학의 영토"를 떠난 "허무로 수렴될 것만 같은 절대적인 유언"이며 이는 "음악 이전 혹은 직전"의 "한계 영역"으로 돌입한다고 말한다(무슨 말인지.......)

   우리는 조효원의 이런 이야기들이 그가 기각한 다른 이들과 다르지만 동일한 양상의 오해를 조장한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김태용의 소설은 서사를 해체한 난공불락의 성,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불가능의 영역으로 돌입하는, 블랙홀로 진입하는 인듀어런스호 같은 소설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했다.

(...)

   3부도 할까. 금정연 씨가 말했지만 우리는 이런 분석은 멈추기로 했다. 우리가 이렇게 김태용의 작품을 분석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소설에서 연상과 말장난을 거둬내면 의도와 계산이 곳곳에 숨어 있고 이는 무의미한 말장난, 툭 튀어나오는 연상과 화음을 이루며 손쉽게 기각되었던 재미나 의미를 건져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용의 소설이 흔한 편견이나 수사처럼 대단히 난해하거나 심연스럽고 불가능한 무언가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텍스트의 조각 속에서 드러나는 내용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보편적이기까지 하지 않나. 그냥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면 된다. 힝요오에 웃고 마라롱을 귀여워할 수도 있다. 불가능하지 않다. 가능하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불가능'은 같은 글에서 언급된 바 '불가능을 가장한 아카데미즘'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무슨 말인가? 이들의 판단에 김태용의 소설은 '가능한' 것인데 조효원의 해설은 그것을 '불가능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나는 그것이 작품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평론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본다. 건축방식이 다른 작품, 일면으로 전체가 파악되지 않는 작품을 어떻게든 조감하기 위해서 위로만 위로만 올라가다 보면 숨이 탁 막히는 지점이 등장하는 것이다. 산소가 희박한 공간에서 뱉어지는 말들이 뭐냐면 바로 불가능한 말이다. 이때 평론의 작품에 대한 선의는 어떤 교조성으로서 발현하고 만다. 이것은... 전위의 문학이 아니라 문학의 막장 같은 것이 아닌가. 땅 속 어디서까지 버틸 수 있나 스스로를 시험해보는 굴착 작업이 아닌가. 오해가 오해를 낳는 상황을 타파하려면 우리에게는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후략)


<蠢 #4 - 180623>

Posted by 공장장_ :



a.

  "왜냐하면 그는 낸시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두 사람만큼 대조적인 인물을 상상하기도 힘들겠다). 최근에 전화가 연결된 한 청취자는 그에게 "그만 극복하라"고 말했다. 2006년 슈퍼볼에서 시애틀이 주심 빌 리비의 끔찍한 오판 탓도 있고 해서 졌던 일을 말하는 거였다. 소프티의 대답 : "아무것도 극복하지 마세요." 이것이 그의 철학의 전부다. 이것이 내 철학의 전부다. 실패는 유일한 주제다.

   우리들 각자는 괴로워하는 개인, 예술가, 사업가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존재일 따름이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말러의 스타일도 연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내게는 그의 페르소나가 상당히 '진짜'처럼 느껴지지만 말이다. '진짜'의 의미가 뭐든, 나는 워싱턴 대학 풋볼 팀이 이겨서 소프티의 목소리가 흥겨워지기를 바라고, 왕국의 미리에 대한 그의 기대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팀이 지면, 나는 오전에 한시바삐 아래층 '작업실'로 내려가 일하는 척하면서 그가 한두 시까지 전화를 받는 걸 듣고 싶어 좀이 쑤신다. 그는 절대로 극복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극복하지 않는다. "나는 천성이 예민해서요"라고 말한다. 시애틀 시호크스가 엘리트 쿼터백인 페이턴 매닝을 영입하면 팀의 향방이 완전히 바뀔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는 살짝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여기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습니다."(결국 영입은 없었다.) 라디오를 통해 열망이 전달되고, 열망의 아름다운 슬픔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눈부신 활약을 통해 구원받고 싶어 하는 통렬한 갈망도, 한 공간에 응축된 여러 목소리들도..."(229-230)


b.

  "이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무릇 휴가란 불쾌한 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죽음과 부패를 의식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므로, 미국인들이 꿈꾸는 궁극의 휴가가 죽음과 부패의 거대한 원시 엔진 속에 들어앉는 일이라는 사실은 어뜻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7NC 호화 크루즈에서, 우리는 죽음과 부패를 넘어서는 승리의 환상을 다양하고 교묘하게 구축할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엄격한 자기 개선을 통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각성제를 맞은 듯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의 선박 유지 보수 활동은 다이어트, 운동, 비타민 보조제, 성형수술, 프랭클린 다이어리 시간 관리 세미나 등등 개인적 자기 관리에 대한 노골적인 비유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외면하는 방법은 또 있다. 관리가 아니라 자극이다.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는 것이다. 7NC의 쉼 없는 활동, 파티, 축제, 명랑함과 노래는 아드레날린, 흥분, 자극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활기와 생기를 안긴다. 당신의 존재를 불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열심히 노는 선택지는 죽음-두려움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는 약속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익사시키는 것에 가깝다. "당신은 저녁 식사 후 라운지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쉬다가 시계를 보고 공연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기립 박수와 함께 커튼이 내려가고, 일행들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다음엔 뭘 할까? 카지노에 가거나 디스코장에서 춤을 출까? 피아노 바에서 조용히 한잔하거나 별빛이 영롱한 갑판을 산책할까? 모든 선택지를 다 논의한 뒤 모두가 입을 모읍니다. '전부 다 하자!'" (<출항>,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책자는 끊임없이 '친구들'을 언급한다. 죽음-두려움으로부터 탈출시켜주겠다는 크루즈의 약속에는 선상에서는 누구도 외톨이가 아니라는 약속도 담겨 있다.



c.

   "그러니까 나는 이전에 5.18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는데 실제 내가 그 소설에서 묻고 싶었던 것은,이라고 해야 할지 해보고 싶었던 것은 많은 글에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단원의 막, 의의와 지켜야 할 가치에 가기 전의 공간, 그 공간에 서서 그 공간에 멈춰 있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 같은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공간과 기억을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 멈추는지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 늘 쓰고 싶다. 역사라는 것을 내 안에서 다른 식으로 그것이 어딘가에 멈춰 있더라도 공원에 앉아 그냥 우는 것이라도 그것이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의문이 조금 구체화된 것은 도미야마 이치로와의 대담에서 이진경이 발표했던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5.18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언급했는데 그 증언의 내용이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그 의외의 내용에 대해 이진경은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글을 결론지었다. 나 역시 그런 식의 글 외에는 다른 식의 어떤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증언을 곱씹어보고 그 증언이 가닿는 곳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홀로 거리에 있던 자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우정과 연대일 것이며 5월의 광주에는 그것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5.18 당시의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사람들은 길가에 우르르 나가서 구경을 많이 했다고 했다,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하러 나갔다고 했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고 길에 사람들이 한번에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다니고 그런 이야기에는 그 말 자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니 여전히 나는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에서 멈춰 그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떤 자리에 멈춰버리는 것, 멈춰버리는 공간을 겹쳤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오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줄곧 하고 있다. 또한 당분간 하게 될 고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9월 도쿄에서>, <<겨울의 눈빛>>, 박솔뫼)



a'.

   "데이비드 실즈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2013)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위대한 인물이 방에서 홀로 걸작을 쓴다는 생각을 이제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병리학 실험실, 쓰레기 매립지, 재활용 센터, 사형 선고, 미수로 끝난 자살 유언장, 구원을 향한 돌진으로서의 예술이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어느 순간 소설을 쓰기를 그만둔다. 그는 자신이 끌어모은 온갖 잡다한 메모와 기억을 콜라주한다. 그의 글은 논픽션인가 에세이인가 자서전인가."(<일기>, 정지돈)



c'.

   "'비-작가'는 증언자로서의 글쟁이다. 현장에 던져진 글쟁이는 작위의 실행을 가능하게 할 모든 자원을 상실한 상태에서 글쓰기에 돌입한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쓴다. 이 목격은 전통적 소설의 작위의 시스템에 등재된 시선들의 어떤 것과도 동일하지 않다. 그것은 사회적 총체성을 바라보는 전지적 시선, 신의 시선이 아니다. 목격자는 상황의 전부를 조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내면을 깊이 바라보는 도덕적 자기관찰자의 시선과도 무관하다. 목격자는 협소한 내면을 응시할 시간이 없다. 그의 내면은 꺼져 있다. 그는 외부를 향해 열린, 가장 원초적인 감각-기계로 변모해 잇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사유와 저술의 매체 그 자체인 언어를 명상하면서 언어 속으로 깊이 침잠해들어가는, 메타적 성찰성의 시선, 끝없는 언어 속으로의 잠수와 실험도 아니다. 목격자에게 언어는 순수한 도구, 자신의 단단하고 명확한 도구성만을 갖고 있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목격자는 언어를 사유하지 않고 언어에 매달리거나 언어와 유희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한다. 이런 사용 속에서 언어의 무능력이 처참하게 드러나는데, 가령 언어가 말의 '텅 빔'이라는 이 사태를 견디어내고 자신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이처럼 압도적 감각 부하를 걸어오는 현장의 급박함 속에서 쓰는 자, 쓰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을 목도하는 자, 이것이 바로 박솔뫼가 '욕망'하는 비-작가의 초상이다. (...) 다른 곳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당신에게 정치란? 혹은 정치적 올바름이란? - 나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 (...) 하지만 내게 환기시키는 것은 '그리하여 나는 무엇을 본 사람인가? 누구의 옆에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이다음은?'이라는 몇 개의 질문이다. 내게 정치는 끊임없이 그 질문에 답을 하려 하는 과정이다. 또한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동자를 잊지 않으려는,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정치라기보다 윤리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그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본 사람인가? 내가 본 눈동자는 누구의 것인가?""(<탈존주의의 극장 - 박솔뫼 소설의 문학사회학>, 김홍중)



<蠢 #3 - 180526>



Posted by 공장장_ :



당신의 텍스트 1 

- 사랑하는 당신께


성기완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
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당신
텍스트의 당신은 텍스트의 나
당신의 나는 텍스트의 텍스트
텍스트의 나는 텍스트의 당신
당신의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당신은 텍스트의 텍스트



텍스트아버지의 기재 없이도 읽혀진다. 텍스트의 은유는 여기서도 작품의 은유와 구별된다. 작품은 생명체의 확장이나 <발전>(developpement. 생물학적이고도 수사학적인 이 말의 모호함은 의미 있는 것이다)에 의해 성숙하는 유기체의 이미지를 가리키지만, 텍스트의 은유는 망(reseau)의 은유이다. 즉 텍스트가 확장된다면, 그것은 체계나 배합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게다가 이 이미지는 생명체에 대한 현행의 생물학 관점과도 유사하다). 따라서 텍스트는 어떤 생명적 <존중>도 아니한다. 그 존중은 파기될 수도 있다(게다가 중세는 두 권의 권위서, 즉 성서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지고 그렇게 해왔다). 텍스트는 아버지의 보증 없이도 읽혀진다. 상호 텍스트성의 복원은 역설적으로 유산을 파기한다. 이 말은 저자텍스트로, 그의 텍스트로 <회귀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손님의 자격으로 초대된다는 뜻이다. 그가 소설가라면, 그는 자신의 등장인물 중의 하나로 기재되어, 양탄자 위에 그려진다. 그의 기재는 더 이상 특권적, 가부장적, 비은폐적인(alethique) 것이 아니라 유희와 관계된다. 말하자면 그는 종이 저자(auteur de papier)가 된다. 그의 삶은 더 이상 자신의 허구의 기원이 아닌, 자신의 작품의 협력하는/경쟁하는(concurrent)한 허구이다.”(44)



정지돈 단순하게 구분하면 그렇죠. 그런데 저는 깊이의 차원에서 재현이나 인용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인용은 재현의 배치를 바꾼 재현이다. 그런 면에서 재현 역시 인용의 배치를 바꾼 인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현이라는 게 결국은 세계를 인용하는 거고, 세계의 어떤 인물을 인용하는 거고, 자기의 어떤 상상을 인용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사회에서, 문학으로 치면, 재현의 익숙한 형식이 있어요. 재현적인 형식이 있고, 인용은 인용의 형식이 있어요. 그런데 재현도 인용의 형식으로 쓸 수 있고, 인용도 재현의 형식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 형식 배치를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또 다르게 감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인용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은 재현의 특정한 형식에 매몰된 결과라고 봅니다. 가령 인용은 저자의 권위에 기댄다거나, 원래 있던 말을 반복 한다든가,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창조가 아니라든가. 여기엔 이분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현은 진짜 창조 내면에서 오는 좋은 거고, 인용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두 개의 배치를 바꾸는 짓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정지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얘기하는 것 같아요. "사실을 그냥 얘기하는 게 뭔 문학이냐? 그건 문학 아니다. 사실만 나열하는데......" 그리고 사실과 픽션의 문제는 재밌는 것 같아요. 삶과 예술이 피드백 작용을 한다는 말은 사실과 픽션이 구분이 잘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구분되는 영역이 있죠. 구분되는 영역이라는 건, 아주 간단하게는 이런 단순한 사실입니다. 정지돈은 1983년 5월 31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런 문장도 들으면 즉각적으로 해석을 해요. 고담 대구 출신이군. 1980년대 초반 생이야. 거기에 대한 편견 내지는 생각이 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문학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는 대목은 이렇게 사실과 픽션이 섞여 있는 부분들이거든요. 

정지돈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건 진실 여부가 아니라 효과입니다. 물론 효과만 있으면 어떤 거짓이라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냉정하게 얘기하자는 거죠. 실제로 효과만 있으면 그게 거짓이라도 기능을 하잖아요. 꼭 그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빌렘 플루서적인 디지털 가상 세계까지 안 가더라도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케이스지만 트럼프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위험한 이야기지만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팩트나 진실에 집착하는 태도, 그걸 규명하려는 시도도 사실은 효과를 산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정지돈x강동호)

“(...) 그리고 독자는 두 번 유희한다. 그는 텍스트를 가지고 유희하며(놀이의 차원에서), 그리하여 그것을 재생산할 실천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실천이 수동적, 내적인 모방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텍스트는 바로 이러한 축소에 저항한다) 그는 텍스트를 연주한다(jouer). 게다가 음악의 역사는(<예술>이 아닌 연주로서의) 텍스트의 역사와 아주 흡사하다. (...) 오늘날 후기 계열적인(post-seriel) 음악은, 이런 <연주자>의 역할을 전복시켰다. 연주자는 일종의 공저자로서, 악보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악보를 완성하는 자이다. 텍스트도 이런 새로운 종류의 악보와 아주 유사하다. 그것은 독자에게 실질적인 협동을 요구한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변화이다. 누가 작품을 연주/집행(executer)한단 말인가(말라르메는 바로 청중이 책을 생산하기를 바라면서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비평만이 작품을 집행/연주한다(내가 말장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현대적인 텍스트(난해한)나 전위적인 영화, 혹은 그림 앞에서 느끼는 <권태>는 바로 독서를 소비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권태란 텍스트를 생산, 유희, 해체할 수 없다는 것을, 시동을 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45-46)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대시수첩>>(1981)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음악의 분야에서는 19세기에 위대한 작곡가가 많이 있었고 20세기가 되자 위대한 연주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1960년 이후 연주자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술도 문학도 어느 순간 연주자의 시대가 되었다. 미술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자기 장르의 대가가 만든 악보 외에 다른 장르의 악보와 기술, 사회/대중문화의 악보를 자기 것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문학은 위고나 디킨스가 활약하던 시대가 끝나고 프루스트와 조이스를 지난 이후 작곡보다는 연주를 하며 불협화음을 넣고 재가공하거나 반-문학으로서의 창작에 몰두했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고다르를 일컬어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새롭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벨바그와 누보로망이 가까웠던 건 그러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흐름은 이어지지 않았다. 음악과 문학은 실패하거나 포기했고 영화도 그렇다. 그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했고 살아남은 소수는 아직도 대중을 무시하는가, 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국가의 지원을 받거나 골방 작업을 이어간다. 뒤샹 “미래의 예술은 언더그라운드로 향할 것이다”(1961).

(...)

다시 하스미 시게히코로 돌아가자. 어떤 이들은 새로운 작곡이 불가능하거나 과거의 대가를 뛰어넘는 작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이 만든 틀-악보를 보고 연주를 계속하는 한편, 어떤 이들은 연주의 방식 자체를 바꿔 저장된 작곡가(또는 역사)를 직접 재생하거나 뒤섞고 이를 통해 ‘악보 없는 연주’(그러나 이것은 작곡이 아니다)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이전에 있었던 패러디나 차용, 인용과는 결이 다른 것 아닌가. 그리고 이런 형식이 가능하게 된 건 기술의 변화 때문이고 변화된 미디어 환경은 창작의 토대를 변화시켰으며 이는 작곡/연주의 개념을 바꾼 것 아닐까.

그런데 이게 미래일까. 사이먼 레이놀즈는 묻는다. “혹시 그 예술은 불임이 아닐까.” 이런 예술은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하고 재생하며 소비할 뿐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예술이 아닐까라는 의문. 그리고 사이먼의 의문에 이어 이러한 형태가 일정 부류 또는 한때의 유행을 넘어설 수 이는가라는 의문. 추상이 유행하고 음렬주의가 유행하고 자기반영적 서사가 유행했던 것처럼, 그저 한때의 유행일 뿐인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레트로 마니아>>에서 미래가 가능했던 과거가 있었고 그것을 아직 꿈꾼다고 마무리 짓는데,  이러한 맺음은 해당 장르의 예술 안에서 새로운 형식이 (끊임없이) 탄생되어야만 한다거나 또는 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표한다. 영화나 문학, 음악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 오히려 우리는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이 땅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타이밍이 아닌가. ‘작곡가’의 시대가 끝나는 것은 역사가 오래된 장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기>, 정지돈)


<蠢 #2 - 180512>



Posted by 공장장_ :

n개의 미래와 n+1번째 문학



“미래가 가장 중요하다. 먼 미래일수록 문학에 가깝다”

- 「새해」, 오한기




미래는 꽃무늬가 틀림없다



이것은 내가 작년 10월 21일 낙성대동의 모 카페에 앉아 썼던 문장이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귀주대첩 998주년을 기념하는 강감찬 축제가 벌어졌던 날로서 학교에서 내려오던 관악02는 호암교수회관에 채 못미처 승객들을 모두 하차시켰고 이게 다 뭘까? 영문도 모른 채 낮게 걸린 만국기들과 사람들을 헤치고 자주 가던 카페에 진입한 나는 예정에 없던 피로와 더위를 느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마셨다. 기억이 난다. 이 더위가 여름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축제의 열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사물들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알고 있었는데 그 앎이 무색하게도 전체적인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예를 들어 천 년 전 군복을 입은 장수들을 태우고 아스팔트 위에서 걷기와 달리기 사이의 속도로 움직이던 말들 같은 게 그랬다. 말들은 차량 통제를 위해 세워두었을 바리케이트 사이를 왕복하고 있었고 바리케이드 밖에는 그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미취학 혹은 취학 아동들이 있었으며 그 장면을 찍는 부모들과 부모의 부모들과 심심찮게 섞여 있는 외국인들부터 그들의 흥을 돋우는 사물놀이 패들까지가 대체 어디서 다 몰려왔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카페의 창가 자리를 싫어했음에도 거기에 앉아 이 모든 것들을 보아야만 했는데 그것은 물론 인파의 일부가 카페로 유입된 덕분에 발생한 온갖 소음과 더불어 장날을 간과한 내가 감당해야 할 무엇이었다. 나는 집중은커녕 반쯤 혼란 속에 빠져 있었고 노트북을 열어 일기라는 명목 아래 아무런 말이나 써 댔으며 그중의 한 문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꽃무늬는 그렇다 치고 미래란 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자문하기가 무색하게도 미래라는 말은 내가 작년부터 가장 빈번하게, 사실 거의 습관처럼 온갖 공란에 써 댄 단어로, 왜 그랬는지를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가 없다. 아무리 좋게 봐 줘도, 거의 없다. 미래는 어디에 있나? 물론 그것은 자신의 사전적인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한 치 앞조차 불투명하던 역사적 격동기와는 달리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지자체에서 각종 축제를 만들어 즐기고 있는 세상에서 그것은 이제 확고하고 부동한 무엇이다. 예를 들자면 강감찬 축제가 벌어진다고 플래카드가 나부끼면 얼마 뒤 정말로 강감찬 축제가 벌어지는 그것이 작금의 미래인데, 바로 그것이 미래를 없게 만들었다는 확신을 나는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미래가 미래를 없앴다. 물론 이 확신(혹은 불신)은 내가 만든 것도 나만의 것도 아니다.


“19세기에 태어날 걸 그랬어. 이런 미래를 몰랐을 거 아냐.

옐친은 기분 나빠, 내가 싫어하는 그 새끼 비슷해.

개좆 같은 새끼야. 개좆 같은 세기; 그런데 왜

그들보다 내가 더 아프냐아?

걱정 마. 노태우가 내 꿈에 나타나진 않아;

교활한 것보다 무자비한 쪽이 더 낫다 할까?

이상하지, 난 돈은 못 버는데 잘 산단 말야.

부패에서 올라온 거품의 浮力이 나까지 뜨게 한 걸까?”


-「우울한 거울 2」 부분


황지우가 1998년에 낸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는 소련 붕괴(정확히는 공산주의 혁명의 실패) 이후 비루한 생활인/가장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애석함으로 가득한 시집이고 (당연히) 그는 나보다 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교활한 것보다 무자비한 쪽이 더 낫다 할까?”라는 역설적인 물음은 물론이거니와 기실 그가 이 시집을 마지막으로 시 쓰기를, 적어도 시집으로 묶어내기를 그만둬 버렸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시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그의 우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노태우”로 대변되는, 도래해 버린 “미래”가 그가 믿었던 미래와 전혀 다르다는 데서 기인한다. 얼마나 달랐냐면 그로 하여금 겪어본 적도 없는 과거(“19세기”)를 호출해낼 만큼 달랐다. 다시 이십 년이 지난 시점에 이걸 읽고 있노라면 그의 실낱같던 믿음에 동의가 되면서도 그가 얼마나 순수(혹은 순진)했는지가 보여 안쓰럽기까지 한데, 물론 이 감정은 지금의 나에 대해서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황지우에게 “그래도 노태우가 전두환보다는 낫지 않나요?”하고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리는 미래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 티셔츠 주운 건데요



『천국에서』나 『풀이 눕는다』를 통해 동시대 청년/예술가들의 초상을 다분히 절망적으로 그려온 바 있는 김사과는 산문집 『0 이하의 날들』에 이르러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일반화시켜 보편성이나 객관성을 획득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려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 그는 이십 대 초반이자 대학 초년생이었을 2000년대 중반에 벌써 “내 삶이 망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이 망함에 대한 감각은 김사과의 소설 세계를 집요하게 관통하는 것이어서 데뷔 이래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나 왔다. 작년에 출간된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의 표제작 「더 나쁜 쪽으로」는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소설로, 요약하자면 온갖 세련되고 힙한 것들이 포진해 있는 거리에 속한 ‘나’와 거리의 현현된 역사라 할 ‘그’가 그 거리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야기이며,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파티를 지나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가 찡그린 채 눈을 감는다. 오늘밤 그는 잠들지 못할 것이다. 그에겐 지독한 불면증이 있다. 그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전부다. 잠을 빼앗긴 밤, 그는 늪으로 향할 것이다. 기적 없이. 그리고 우리 착란의 피난민들의 운명은...... 뒷걸음질을 치던 나는 벽에 부딪힌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 나는 부엌을 지나, 출구로 향한다. 문이 열린다. 아주 쉽게 그렇게 나는 그곳을 빠져나온다. 계단을 뛰어내려오는데 뭔가 사라진 것이 느껴진다. 어, 죽어버렸다. 신기하다. 나는 중얼거린다. 신기하다. 건물 밖, 어둠이 쓸려나간 거리는 새벽의 푸른빛이 채우고 있다. 새벽의 냉기가 폐를 채운다. 문득 내가 맨발인 것을 깨닫는다. 발에 닿는 바닥이 얼음처럼 따갑다. 텅 빈 거리, 잠에 빠진 상점들의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친다. 하지만 비치는 저 형상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여기는 어디인가. 내가 알던 거리는, 내가 알던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아아, 기억난다. 그들은 늪으로 향했다. 그뒤는 모른다. 저기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저자들을 더이상 모른다. 여기는 내 거리가 아니다. ......향해 걷는다. 해가 떠오른다. 햇살 아래 깨어난 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걷는다. 더 나쁜 쪽을 향해 걷는다." 


여기에는 트릭이랄 것도 없는 트릭이 숨어 있는데, 아니다, 모른다, 없다로 끝맺고 있는 문장들을 사실은 맞다, 안다, 있다로 고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화자가 겪고 있는 곤경은 쇼윈도에 비친 저 형상이 바로 ‘나’이고, ‘나’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저자들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햇살 아래 깨어난 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너무도 잘 안다는 데 있다. 중간에 등장하는 ‘늪’은 이렇게 역설적으로만 성립하는 ‘알 수 없음’의 형상으로서 이미 소설의 중반부에 “착란 속의 피난민들, 거대한 황무지 늪에 도착하여 자신들이 낙원에 도착했음을 확신한다”는 문장을 통해 언급된 바 있다. 그들(‘우리들’)이 늪과 낙원을 착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들은 모두 역사가 끝나는(혹은 역사 이전의) 지점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거리의 모든 미래를 알고 있고, (때문에) 그것은 과거와 하등 다를 바가 없으며, 그 지점에서 필요 이상으로 돌올하게 튀어나오는 것은 바로 탈-역사화 된 존재로서의 현재다. 그렇기 때문에 김사과의 소설 속 인물들은 본드나 마약(「나와 b」), 더 나아가면 범죄(「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고 더 나아가지 못하면 음악(「더 나쁜 쪽으로」)인 비현실에 탐닉하게 된다.


때문에 당연하달까 그의 소설의 귀결은 자기파괴나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고 나는 거기서 혀를 내두르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반-)영웅에는 미달하고 속인에는 실패하는 그의 인물들을 독자인 우리가 결코 재현할 수 없으며 그런 한에서 우리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보는 것처럼 그의 소설을 안전하게 관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이 현실에, 또 현실이 소설에 틈입하지 않는/못하는 것은 작가 본인의 의지가 다분히 반영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그가 「박승준씨의 경우」나 「이천칠십×년 부르주아 6대」와 같은 소설들을 써 낸 것이 전혀 놀랍거나 새롭지 않았으며 나는 그 소설들을 굳이 분류해야 한다면 SF라고 말하고 싶다. 반대로 말하자면 SF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시대에 우리는 진입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소설만 읽으면 그가 지독한 염세주의자일 것만 같은데 다시 산문집으로 돌아가면 그는 문득 “다른 예술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다른 예술이란 “패배가 아니라 승리에 대한, 환멸이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예술”이며 이를 위해 “지금 우리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절대 패배하지 않는 자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의식 전체를 뒤흔드는 투쟁이다. 그 투쟁은 예술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소설이 한때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것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현실화시켰고 그리하여 문학이 사회적 기능을 담당한 때가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예술은 보편성을 포기했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뒤 거침없이 하찮아졌다”고 말한다. “이제 예술은 짜릿한 유사 환각 체험이나, 자기치유, 기발한 재미, 소시민적 여유 따위를 추구한다. 자기들만의 소박한 세계에서 작은 파티를 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쓰레기로 가득한 세상’ 앞에서 “절망의 반복을 중단할 때가 되었”으며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상상력의 힘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에, 그는 소설가로서 “상상해내야 한다. 가능한 다른 미래를 발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적 언어의 기만



일견 고개를 끄덕일 법하지만 그가 그려온 도저한 절망에 비해 너무 쉽게 호출되는 것 같은 ‘다른 미래’가 나로선 의아한 측면이 있는데, 기실 그에게는 하나의 감정/문장이 숨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란 걸 해봐도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그런다고 세상이 과연 바뀌기나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것. ‘늪’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름과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름은 우리를 총체적 무지, 곧 불능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산업혁명 직후 소스타인 베블런은 “자본주의라는 것의 특징은 현재 산업 활동에 필요한 기계 장비의 최소 단위가 어떤 개인이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우회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며, 또 어떤 한 사람이 혼자서 작동시킬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물론 기계라는 물리적 단위에 대해서 한 말이지만 나는 이 불능이 김사과가 ‘쓰레기로 가득한 세상’에 대해 느끼고 있는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가 느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들의 연대”의 가능성 및 필요성 또한 바로 이런 지점에서 제기되는 것일 터이다. 


연대는 정치적 방법론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정치는 물론 예술을 경유한다. 하지만 어떻게? 예술, 그중에서도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나?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은 국문과 수업에서 접한 1930년대의 카프와 구인회 사이의 묘한 간극이나 1960년대의 참여-순수 논쟁 따위인데, 당시에도 (김사과의 표현을 빌자면) 세련되지 못한, 이상한 대립 구도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런들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민주화를 쟁취한 1990년을 전후로 이러한 구분의 첨예함 혹은 유효성이 한풀 꺾이고 포스토모더니즘이라는 격랑과 문학동네라는 모델의 등장 이래 창비와 문지의 차이도 별다른 의미가 없어지고 마침내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고한 즈음, ‘미래파’로 칭해진 일군의 시인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었든 세상에서는 여전히 불합리하고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일견 “자폐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문학이 나타났기 때문으로, 진은영은 이에 관한 일련의 논의들을 두고 <감각적인 것의 분배 :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에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


그는 랑시에르의 논지를 받아들여 ‘미학 = 감각의 수용능력을 다루는 학 = 감성론’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출발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한에서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고 말한다. 근대 예술은 ‘윤리적 체제’와 ‘사회적-재현적 체제’를 거쳐 ‘미학적-감성적 체제’에 이르렀으며 2000년대 이후 한국 시인들과 비평가들의 자의식에는 해당 관점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내에서 예술이 ‘감성적 자율성’을 획득할 때 그것은 “세계의 낡은 감각적 분배를 파괴하고 다른 종류의 분배로 변환시킴으로써 삶의 새로운 형태들의 발명”을 이루어낸다. 즉, 예술이 정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감각/감성(의 재분배)를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물론 모든 예술적 시도가 이에 이르는 것은 아니며, 이 지점에서 예술의 ‘정치’는 ‘치안’과 구분된다.


““폴록을 말레비치와 비교하면 후자가 새로운 사회적 형식과 삶의 새로운 역동성의 발명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폴록은 그것과 확실하게 다릅니다. 폴록은 행동주의 예술 안에서 어떤 형식의 종말이었으며, 1930년대 미국에서 아주 강하게 작용했던 사회적 실천 안에서 예술적 개입의 종말이었습니다.” 폴록은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미국 예술계는 냉전체제하에서의 소련의 이데올로기나 맑스주의와 경쟁하기 위해 폴록의 추상주의에 주목했다. 그런 의미에서 폴록의 작품은 네거티브한 방식으로 정치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랑씨에르가 말하는 정치성이란 기존의 지배적 담론체계에서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지배적 담론체계를 파열시켜 새로운 종류의 감성적 분배를 가져올 삶의 형식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폴록의 작품은 현실의 감각체계와 불화를 일으키는 ‘정치’의 논리보다는 ‘치안’의 논리에 가깝다. 새로운 실험의 정치성이란 다른 삶의 실천영역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감각체계의 변화를 가져오느냐 여부에 따라 식별될 수 있을 뿐이다.”


이론가 진은영이 이렇게 말할 때 시인 진은영은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가? “최근의 두 가지 작업을 예로 들어보자. 하나는 미학적 실험의 사례로서 6명의 시인들이 두 명씩 조를 이루어 상대 시인의 시에서 나온 단어 30-40여개를 활용하여 시를 쓰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그와 관련해서 인터넷 언론에 글을 쓰는 작업이다.” 그는 이 두 작업의 지평이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시인의 ‘모럴’이라는 층위에서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각 지평에 대한 ‘선험적transcendent’ 태도를 가지고서 편의주의적인 감성과 형식으로 작업에 임하지 않는 한 시인은 항상 곤경에 임하게 되는데, 이 곤경이 열어 보이는 심연이야말로 시인의 ‘모럴’이 자리하는 곳이라는 측면에서 두 작업은 문학적 실험의 지평에서 공존하며, 반대로 타자의 언어가 주는 질료적 저항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언어의 형식을 만들어나갈 때 발생하는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두 작업은 참여의 지평에서 공존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과연 이 두 작업은 같은 평면에 자리하는 종류의 것인가? 만약 그가 용산참사 현장에서 전자의 작업을 하고 문지문화원 사이가 주최한 Media@Text Fest에서 후자의 작업을 했더라도 각각의 의미는 어긋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단지 ‘감성의 재분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나는 여기에 부정적이고, 때문에 그가 랑시에르를 끌어들이고 너무 먼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이 둘의 접합-화해를 무리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을 교차시켜 볼 때 음미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이들을 굳이 한 평면 안에 압착시키는 순간 오히려 유비를 가능케 하던 거리는 사라지는 게 아닐까.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런 것이다. 진은영의 글은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랑시에르의 일침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미적 언어의 기만 : 평범한 슬픔을 기이하게 표현한다. 사소한 불행을 미화한다. 공허를 치장한다. 한숨 혹은 빈정거림을 미사여구로 꾸며서, 언어를 통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오늘 과장하지 맙시다



물론 기만은 필요하다. 즉, 2000년대에 미래파가 있었다면 2010년대에는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수많은?) 한국문학 애호가들의 반발을 살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물론 2010년대에도 좋은 작품들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좋은 작품들은 사실 언제나 많았다(그리고 언제나 없었다). 내가 그들을 주시하게 된 계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정확히는 내리고 치워버리기에) 적절한 언어가 내게 없었다는 데에 있다. 나는 오한기와 정지돈의 소설들을 보고 이들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으며 금정연은 글을 너무 못 쓰는데도 승승장구하는 게 납득되지 않았고 박솔뫼는… 나쁜 친구들을 만나 잘못된 길로 빠졌다고 생각했다(이상우는 읽어보지 않았다). 이제는 정작 본인들은 이런 평가에 관심 자체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별 의미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사이 정지돈은 개인적으로 꽤 신뢰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고 그것은 그의 산문이 소설과는 다르게 설득력이라는 걸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지돈과 금정연이 함께 쓴 『문학의 기쁨』의 목차는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출발해 ‘우리가 미래다 We Are the Future’라는 선언으로 끝나며 여기서 미래, 라는 단어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좀 아찔해졌다. “우리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게 너무 좋았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금정연은 메일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to the future라고 답했고 금정연은 다시 we are the future라고 답했다. 그렇다. 미래가 예전 같지 않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미래가 예전 같지 않다’는 핀란드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미카 타닐라의 다큐멘터리에서 따온 것이며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볼 수 있는 거지?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아니다. 나는 이 진단, 그러니까 김사과가 자신의 삶에서 체현하고 그것을 소설로 승화시키며 힘겹게 얻어낸 미래에 대한 (그것이 망했다는) 진단과 다르게 외삽되고 있는 이 진단의 방식이 흥미로웠는데, 기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곤경에 대해 심각해지는 일이 없으며 금정연의 “저는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운운은 황지우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정지돈은 본인의 첫 소설집 말미에 평론가의 해설 대신 이런 내용이 담긴 자선 산문을 실은 바가 있다.

 

“문학이 문학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하거나 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문학이 순수문학이었던 적이 없었으나 모더니즘의 환상, 자율성의 신화가 문학을 문학으로 회화를 회화로 만든 것 아닌가. 새로운 장르와 자본/상업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이유로 떼를 쓰고 있었던 것 아닐까. 과거로 돌아가자거나(‘원래의 모습’으로) 미래의 전위는 통섭, 횡단, 접합이다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뤼노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1991)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결코 전진하거나 후진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시대들에 속하는 요소들을 활발하게 분류했던 것뿐이다. 우리에게 아직도 분류는 허용되어 있다. 시간들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분류에 의해서이지 시간이 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코 미래로부터, 혹은 시간의 깊이로부터 도착하는 동질적이고 전지구적인 흐름 속으로 뛰어든 적이 없다. 오랫동안 계속 커지면서 바로 지금 다시 흐르게 될 조류란 없다. 이러한 조류는 존재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다른 사물들로 나아갈 수 있다 – 다시 말해 언제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과한 다수의 존재들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기왕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한동안 옳았거나 적어도 유효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막다른(혹은 무한한) 골목에 이르러 ‘망했다’는 말만을 반복해서 출력해대는, 건전지 넣은 인형 같은 것으로 쪼그라들어버렸다. 이러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현재 적절한 것으로서 요구되는’ 문학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그러나 대답의 가부에 앞서 적절치 않다는 것. “만일 정말 역사가 뒤섞여 있고 시간이 혼재한다면 역사적 형식은 환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또는 형식의 필연성은 환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래의 방법론을 탐구하거나 ‘과거’의 방법론을 경멸하는 것, ‘현재’에 적확한 형식이 있다는 생각 역시 우스꽝스러운 것 아닌가.” 하여 정지돈도 금정연도 별다른 확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만 “하스미 시게히코 식으로 말하면 픽션이고 데이비드 조슬릿 식으로 말하면 노이즈이며 데이비드 그레이버식으로 말하면 놀이”인 어떤 전망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며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권력투쟁의 장에서) 빠져나오는 것, 관두는 것”임을 천명하는데 이렇게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의심과 불만이 가시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것이 ‘정치’의 영역에서 ‘치안’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만은 나에게도 어째 확고한 데가 있다.


어쨌든 후장사실주의자들을 미래파와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노골적인 메타적 시선 외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나는 이것이 ‘연대’에 대한 하나의 의지라고 보았다. 과연 그렇게들 생각하는지가 궁금하여 알라딘에서 『문학의 기쁨』의 독자 서평을 살펴보았더니 “? 지들끼리만 즐거우면 뭐하냐?”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는 바로 이것이 그들이 바라던 것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다. 누가 속은 것일까? 나인가 익명의 서평가인가? 다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적어도 모두를 즐겁게 하려는 무엇을 문학이 생산할 수 있던 시절은 (있지도 않았지만) 다 지나갔으며 거기서 ‘노이즈’ 따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우리는 영화와 게임과 웹툰을 비롯한 수많은 새로운 장르와 코드들을 가지게 되었고 아마 그것들도 언젠가는 지금의 문학과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인데 그 관점에서 지금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과거(예컨대 고진적 의미에서의 근대문학)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 자신의 지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처럼 전혀 다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너무 오래된 미래가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착각/착란 또한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God Save the Queen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는 명백한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구성물이자 투사물이다. 신학적 문화의 영역에서 살았던 중세인들에게 완전함이란 신이 우주와 인류를 창조한 과거에 속한 것이었다. 따라서 역사적 존재는 낙원에서의 추방, 버려짐, 본래의 완전함과 단일함의 망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래에 관한 신화는 근대 자본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등장했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팽창과 그에 따른 지식의 팽창이라는 경험에서 말이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생산 모델의 독특성이 낳은 가상효과이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 이래로, 즉 근대가 시작된 이래로 근대성이란 세계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이라 규정됐으며, 현재 자본주의 경제의 독특성은 바로 물질적 재화와 지식 영역의 끊임없는 확대로 이어지는 잉여가치의 축적에 있다. 

1850년부터 1950년 사이에 미래에 관한 신화는 최고조에 달했고 맹신 이상의 것이 되어버렸다. 미래에 관한 신화는 경제 성장이라는 현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인 '진보' 개념에 기반한 진정한 신념이 된 것이다. 정치행위도 진보하는 미래라는 이런 믿음의 견지에서 재구성됐다.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 근대 정치이론의 서로 다른 일파들이 다음과 같은 공통의 확신을 공유한다. 즉 현재는 암울하지만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말이다.”


그렇다면 ‘망함’은 필연적인 결말일까? 2016년 말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와 문학 각각에서 전례 없는 커다란 사건들이 있었고 이를 각각 ‘최순실 게이트’와 ‘#문단_내_성폭력’이라고 명명해보자. 이 두 사건의 내용은 전혀 판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권력관계 내에서 감춰져 온 온갖 추악한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일이었다고 한다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며 무엇보다 내가 주목하게 되는 지점은 이 두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거의 같다는 데에 있다. 이제 와 정계나 문단 내에 있어온 만행과 그에 따른 추문들이 얼마나 공공연하고 뿌리가 깊은 것인지 우리가 모르지 않을진대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김홍중이 인용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미래의 꿈을 향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고 지연하는 것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근대성(근대적 행위)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리처드 세넷은 자본주의의 핵심동력이 결국 "시간-엔진time-engine"의 발명, "미래에 보상을 받을 것이란 희망"의 발명에 있음을 지적한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거기 연루된 행위자들의 심적 에너지를 조직하는(낙원을 꿈꾸게 하는) 마음의 시스템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시스템으로부터 창발하는 독특한 실천양식들의 기원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향한 욕망이 아니라 종교적 구원을 향한 강렬한 '꿈'이 있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해당 사건들이 ‘꿈’을 미끼로 온갖 끔찍한 이면을 은폐시키는 쪽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을 가진 ‘시스템’으로서의 기존의 ‘미래’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즉 ‘시간-엔진’이 고장날 수도 있다는 징후적 풍경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이 질문은 피해가서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피해갈 수도 없는 것인 것이, 이 사건들은 동시에 그 과정이 결코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명백히 드러내보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햇수가 두 번 대통령이 한 번 바뀌고 난 지금,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되었던 이재용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으며, 문지의 설립자 중 한 명인 김병익은 성추문 전력이 폭로된 고은 시인에 대해 “돌출적 존재” 운운하며 감싸 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현재에 도래해 있는 과거의 미래다. 부디 내가 여기서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려 한다거나, (문학이) 맞서야 할 대상이 특정한 체제나 권력구조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존하는 모든 미래는 그것이 자신의 자리를 점하는 순간 온 힘을 다해 부동하려고 하며, 때문에 도래해야 할(지금은 없는) 미래는 결코 한 번의 광장이나 한 장의 지면 위에서 뚝딱하고 발명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현재를 소환할 수밖에 없는데,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현재를 견지해내야 하는 동시에, 현재가 미래에 목적론적으로 복무하는 일을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관점에서 요구되는 예술적 태도/형식이 바로 ‘픽션’이고 ‘노이즈’이고 ‘놀이’인 것이 아닌가. 즉 ‘미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진단은 사후를 관조할 때가 아니라, 반대로 ‘미래가 예전 같지 않(아야 한)다’고 읽힐 때에만 기능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입장은 미래를 선취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일종의 기만이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어쩌면 가장 손쉽게) 행해지는 것이 예술을 미래 그 자체로 형상화하는 행위인데, “그중 대표적으로 두가지만 꼽자면 파국(혹은 종말)과 유토피아를 들 수 있다”. 지젝과 바디우로 위시되는 이론가들에 따르면 ‘역사의 종말’이란 기실 ‘유토피아의 종말’에 다른 이름에 불과하기에 “거짓 신화와 맞서 싸우기 위해 가장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유토피아의 (재)발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시간-엔진’을 전용(轉用)하는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제스처” 자체는 무해한 것일지언정 그러한 (종교적) 이상들이 현실로 넘어오는 경우에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폭력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힘을 제압하는 힘의 논리처럼 미래를 제압하는 미래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학의 가능성이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치의 미학이 관할하는 영역 너머에서, 미학의 정치로 행해내야 하는 어떤 것일 터이다. 나는 그것이 앞서 말한 기만을 역이용하는 일, 즉 예술과 미래의 위상차를 유지함으로써 미래에게 기만당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도열된 미래(들)보다 더 많은 문학이 필요하다. 다만 이것은 문학의 신화화가 아니라, 미래의 탈신화화로부터 시작될 터이다.




CREDIT 



(출처 http://www.ganggamchan.com)


  •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8
  • 김사과, <<더 나쁜 쪽으로>>, 문학동네, 2017
  • 김사과, <<0 이하의 날들>>, 창비, 2016
  • 김사과, <트럼프 0년의 단상>, <<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 심보선, <우리가 누구이든 그것이 예술이든 아니든>, <<그을린 예술>>, 민음사, 2013
  • 소스타인 베블런,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외>>, 홍기빈 역, 책세상, 2009
  • 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
  • 진은영, <시와 정치 :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모럴>, <<비평문학>>, 2011년 봄호
  • 금정연×정지돈, <<문학의 기쁨>>, 루페, 2017
  • 정지돈, <일기>, <<문학과사회>> 2016년 봄호
  • 정지돈, <all good spies are my age>, <<문학과사회>>, 2017년 여름호
  • 프랑크 베라르디 비포, <<미래 이후>>, 강서진 역, 난장, 2013
  • 김홍중, <<사회학적 파상력>>, 문학동네, 2016
  • Analrealism 편집부, <<Analrealism vol.1>>, 서울생활, 2015




( <청년문학> 19호)

Posted by 공장장_ :